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콤니노스 왕조 (문단 편집) == [[경제]] == 1081년 [[알렉시오스 1세]]가 제위에 올랐을 때, 제국의 경제는 파탄 상태였다. 과거 막대한 부담을 지우던 군비는 많이 축소되었지만, 영토 상실과 맞물린 결과 군대 자체와 그 기반이 동시에 붕괴해 버린 상태였다.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화폐의 급격한 가치 절하는 실지로 인한 시장 붕괴와 맞물려 통화 체제 역시 박살내 버렸다. 그나마 전대 황제들이 재정 압박을 견디다 못해 연금 지불을 멈춘 것은 좋았으나, 동시에 제국 정부에 대한 신뢰와 권위마저 추락시킨 상황이었다. 알렉시오스는 선대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으므로, 차라리 초강수를 두는 선택을 택했다. 아예 재정 부담을 덜기위한 화폐의 가치 절하를 멈추지 않고, 예산 확충을 위해 세율을 올리는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정책은 범국가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가용 예산이 늘어나고 군대가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외적들을 격퇴해내자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급한 위기들이 마무리 되자 1092년에는 화폐 개혁이 진행되었다. 동시에 제국의 기존 물적, 인적 요충지이던 [[아나톨리아]]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이 유럽지역에 정착하여 생산 활동을 시작하였고 경제는 다시금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12세기로 들어서면 큰 자연 재해가 없는 환경이 제국에 도래하면서 전체적인 생산량을 증대시켜 시장 경제가 활성화 되었고, 좀더 자유시장적인 분위기에 알맞는 -전보다 작은 정부라 볼 수 있는- 콤니노스 체제가 시작되면서 제국의 경제는 호황을 맞게 된다. 12세기 중반을 넘어서 재건 된 군대가 [[테마 제도]]를 버리고 프로니아 체제를 택하면서 용병을 보다 많이 고용하고 중앙 상비군을 증대 시키게되자, 군역을 담당하던 인력 비율이 줄어들게 되고 더욱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게 되었다. 동시에 앞서 언급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도시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제국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는 십수만에 달하는 도시로 성장하였고 니케아, 모넴바시아 등의 지방 도시들도 수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게 되었으며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반백 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가 되었다. 이 시기의 제국 경제는 절정에 달하여 당대 사람들이 과거 전성기를 뛰어넘었음을 -물론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자부할 정도가 되었고, 그 유명한 '수도에서 일일 관세로 금화[* 당시 제국 최고 액화인 히피르피론(Hyperpyron)] 2만닢을 거둬 들였다'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가 되었다. 관치 경제가 아닌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관세'로 말이다. 이러한 막강한 경제력은 [[마누일 1세]] 시기 적극적인 대외 활동에 큰 보탬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1180년 마누일 사후를 전후하여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마누일은 재위 내내 호탕한 -다르게 표현하면 방만한- 지출을 자주 저질렀고,[* 이탈리아 재정복을 위해서 안코나 등 아드리아 해변 동해안 및, 남이탈리아에 자금 지원을 상당히 크게 했다.] 이는 재위 중후반까지는 큰 문제를 노출시키진 않았다. 튼튼한 경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족벌 체제의 특성상 부정부패가 늘어가기 시작하였으며 정부가 고용한 많은 외국 관리들 또한 이에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부를 축적하여 힘을 기른 상인들은 제국 정부에 큰 소리를 치게 되었으나, 이들을 제어할 관료 집단은 이미 축소된데다 자리를 채우고있던 무능하고 부패한 콤니노스 집단은 돈줄을 쥔 상인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인 집단은 여론을 주도하게 되었고 이들은 경쟁 상대인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같은 서방의 상인 세력을 적대하였기에 반서방 감정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과정 중의 1182년의 [[https://en.wikipedia.org/wiki/Massacre_of_the_Latins|라틴인 대학살(Massacre of the Latins)]]도 빼놓을 수 없고. 동시에 특권없이 이러한 적대감에 노출 된 서방 상인들이 제국을 공격하는 1204년의 사태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베네치아는 상인들의 국가니까.] 정부의 착취가 심해지고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이 공공연히 '제국 전역에서 생산 된 재화를 바다가 강물 받아들이듯 흡수해대면서 뭐가 더 부족하냔거냐?'라는 불만을 토로할 정도가 되어 버렸고, 이러한 움직임은 마누일 재위 동안은 수면 아래에 있었으나 그의 사후 [[앙겔로스 왕조]]가 등장하면서 제국 전역에 번지게 된다. 이러한 식으로 진행 된 정치 혼란과 반란은 전체적인 경제력에 나쁜 영향을 미쳤고, [[제4차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제국이 공중 분해되자 제국의 경제력은 12세기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며 하강 곡선만을 그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